중국의 ‘광장 공포증’ 그리고 대한민국
중국은 내일 6월 4일 ‘천안문 사건’의 20주기를 대비하여,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 주변에 정복 및 사복 경찰력을 증가 시키고, 지식인이나 반체제 인사들은 가택에 연금 시키는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검열 수준을 올리면서 MS의 Hotmail 서비스를 차단 하였고, MS의 새로운 검색엔지 Bing과 미니 블로그라고 불리는 Twitter 서비스를 차단하였습니다. ‘천안문 사태/사건’을 금칙어로 설정하였고, 야유의 온라인 사진 공유 서비스인 플리커역시 차단 되었습니다.
중국의 경우에는 이미 언론 및 방송에 대한 차단은 확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만, 자유롭게 의견이 공유 되는 인터넷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단속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천안문 광장이 베이징 관광의 핵심 코스 중 하나이기도 하고, 인민의 의사표현을 막는다는 소리를 듣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차마 폐쇄는 못하고 , 엄청난 인원으로 경비를 철저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천안문 시위를 주도하였던 많은 청년들과 지식인들은 미국 대사관등을 통한 망명 등으로 중국을 벗어났으며, 20년이 지난 아직도 중국 입국이 거부되는 상황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이 천안문 시위 이후로 중국 정부는 매년 6월이면 광장 공포증에 걸린듯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비록 천안문 광장을 폐쇄하지는 않아도 많은 경비 병력과 언론/방송/인터넷 통제를 통해서 또 다른 천안문 시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극히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로써는 국가 권력이 전복이 될 가능성이 있는 공포스러운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지 6월 달에는 중국 정부의 ‘광장 공포증’이 극에 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진은 22년전 사진입니다. 2009년 사진이 아닙니다.
그리고, 2002년 효순이 미선이를 위한 촛불 추모가 광화문과 시청 그리고 미국 대사관이 추모 촛불의 바다 속에 빠져 들게 되었습니다. 특히 12월 14일은 광화문에 약 3만명의 시민이 모여 촛불을 들었고 이 촛불 추모 5일 후인 12월 19일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으로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16대 대통령 선거는 당시 한나랑 후보인 이회창 후보가 틀림없이 당선 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극적인 역전 드라마가 펼쳐 졌었습니다.
그리고, 효순이 미선이 촛불 추모는 대한민국에 평화적인 촛불 시위라는 새로운 시위 방법이 정착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4년에는 탄핵 반대를 외치는 촛불 시위가 역시 광화문에서 시청까지에서 진행 되었습니다. 그 해 치워졌던 16대 국회의원 총선은 열린우리당의 압승으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2008년 5월부터 시청 앞에서는 미국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 시위가 진행되었습니다. 청계광장, 종각, 그리고 시청에서 일어났던 촛불 시위는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하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2009년 5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가 서울 광장에서 열렸습니다. 1987년 때와 너무나도 유사한 데자뷰 같은 느낌을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노제가 앞으로 어떤 변화를 이끌게 될까요?
천안문 사태만큼 큰 사건이 서울에서 일어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광장들에서 일어났던 일은 대한민국의 역사에 한 획을 그어왔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중국의 광장 공포증만큼이나 우리 정부도 ‘광장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아직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도 천안문 광장을 열어 놓는데, 우리는 시청광장, 종각, 청계광장을 다 틀어 막고 있습니다. 아마도 천안문 광장은 관광객이 오는 문화재이고, 서울 광장이나 청계광장이나 종각(보물 2호 보신각 종은 중앙박물관에 있습니다)은 문화재가 아니어서 그런가 봅니다. (i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