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광장 공포증’ 그리고 대한민국

 중국은 내일 6월 4일 ‘천안문 사건’의 20주기를 대비하여,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 주변에 정복 및 사복 경찰력을 증가 시키고, 지식인이나 반체제 인사들은 가택에 연금 시키는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검열 수준을 올리면서 MS의 Hotmail 서비스를 차단 하였고, MS의 새로운 검색엔지 Bing과 미니 블로그라고 불리는 Twitter 서비스를 차단하였습니다. ‘천안문 사태/사건’을 금칙어로 설정하였고, 야유의 온라인 사진 공유 서비스인 플리커역시 차단 되었습니다.

 중국의 경우에는 이미 언론 및 방송에 대한 차단은 확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만, 자유롭게 의견이 공유 되는 인터넷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단속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천안문 광장이 베이징 관광의 핵심 코스 중 하나이기도 하고, 인민의 의사표현을 막는다는 소리를 듣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차마 폐쇄는 못하고 , 엄청난 인원으로 경비를 철저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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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사태의 발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1989년 중국에서는 후야우방의 명예회복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연일 계속되오 있었고, 1989년 5월 13일부터 베이징대학교와 베이징사범대학교를 중심으로 전국에서 모인 학생 대표들이 천안문 광장에서 단식 연좌 농성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5월 15일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중국/소련 정상회담을 위해 베이징에 도착했으나, 5월 17일 발생한 100만명이 넘는 대규모 시위로 일정을 변경해야 했습니다.  이후 중국 정부는 이 시위를 난동으로 규정하고 베이징 시 전역에 계엄을 선포했습니다. 당시 시위대에 유화적이던 조자양(자오즈양) 총서기가 사라지고, 강경파인 양상곤(양상쿤) 국가주석 과 이붕(이펑)부총리는 6월 3일 밤 인민해방군 27군을 동원하여 무차별적으로 발포하며 시위군중을 살상하며 해산시켰고,  천안문을 제외한 베이징 시내 곳곳에서 시위자들의 해산 및 색출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게 되었습니다.
 당시 천안문 시위를 주도하였던 많은 청년들과 지식인들은 미국 대사관등을 통한 망명 등으로 중국을 벗어났으며, 20년이 지난 아직도 중국 입국이 거부되는 상황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이 천안문 시위 이후로 중국 정부는 매년 6월이면 광장 공포증에 걸린듯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비록 천안문 광장을 폐쇄하지는 않아도 많은 경비 병력과 언론/방송/인터넷 통제를 통해서 또 다른 천안문 시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극히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로써는 국가 권력이 전복이 될 가능성이 있는 공포스러운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지 6월 달에는 중국 정부의 ‘광장 공포증’이 극에 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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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22년전 사진입니다. 2009년 사진이 아닙니다.

 중국의 천안문 사태 2년 전인 1987년 6월 10일 한국에서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시청 광장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었습니다. 6월 10일부터 26일까지  총참여 인원은 약 500만명에 달할 정도의 대규모 시위였습니다. 특히 이한열씨가 6월 9일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6월 9일부터 전국민 대회가 열린 6월 10일까지 시청 앞에는 약 100만명의 인원이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당시 여당이던 민정당은 6.29선언이라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 중심으로 한 내용을 발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 효순이 미선이를 위한 촛불  추모가 광화문과 시청 그리고 미국 대사관이 추모 촛불의 바다 속에 빠져 들게 되었습니다. 특히 12월 14일은 광화문에 약 3만명의 시민이 모여 촛불을 들었고 이 촛불 추모 5일 후인 12월 19일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으로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16대 대통령 선거는 당시 한나랑 후보인 이회창 후보가 틀림없이 당선 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극적인 역전 드라마가 펼쳐 졌었습니다.

그리고, 효순이 미선이 촛불 추모는 대한민국에 평화적인 촛불 시위라는 새로운 시위 방법이 정착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4년에는 탄핵 반대를 외치는 촛불 시위가 역시 광화문에서 시청까지에서 진행 되었습니다. 그 해 치워졌던 16대 국회의원 총선은 열린우리당의 압승으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2008년 5월부터 시청 앞에서는 미국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 시위가 진행되었습니다. 청계광장, 종각, 그리고 시청에서 일어났던 촛불 시위는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하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2009년 5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가 서울 광장에서 열렸습니다. 1987년 때와 너무나도 유사한 데자뷰 같은 느낌을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노제가 앞으로 어떤 변화를 이끌게 될까요?

 천안문 사태만큼 큰 사건이 서울에서 일어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광장들에서 일어났던 일은 대한민국의 역사에 한 획을 그어왔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중국의 광장 공포증만큼이나 우리 정부도 ‘광장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아직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도 천안문 광장을 열어 놓는데, 우리는 시청광장, 종각, 청계광장을 다 틀어 막고 있습니다. 아마도 천안문 광장은 관광객이 오는 문화재이고, 서울 광장이나 청계광장이나 종각(보물 2호 보신각 종은 중앙박물관에 있습니다)은 문화재가 아니어서 그런가 봅니다. (i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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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3 15:58 2009/06/03 15:58
Posted by Lucida_m.

주가 폭락에 분노하는 중국


[작년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은 세계 최고의 주식 투자자들이었다, 하지만 올해에는 양상이 틀리다. 지난 11개월간 주가는 2/3 수준으로 떨어졌다. 화가난 투자자들은 시위까지 감행하는 중이다. 지난 금요일에는 10%가까이 급등을 하였고, 중국 정부의 개입으로 주가가 반등의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으나, 중국의 투자자들은 바닥이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가를 부양
시키는 것이 과연 좋은 방법일지에 대한 의심을 하고 있다.] (IHT)

 중국이 약 2006년부터 엄청난 주식 활황을 겪으면서, 허풍을 좀 섞어서 전 인민의 투자자화가 되었었습니다. 주식 투자자가 몰리면서 주가는 더 상승을 하였고, 주가 상승세가 다시 투자자를 끌어 모으는 순환을 하였습니다. 특히, 베이징 올림픽까지는 계속 상승하리라고 생각하였던 중국 증시에 장기 상승으로 인한 피로가 찾아왔고, 서브 프라임 모기지 때문에 미국 경제의 추락 및 북경 올림픽 이전의 여러가지 사건들이 겹쳐지면서 중국 증시의 추락이 계속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투자자들의 경우에는 몇 번의 추락을 이미 겪었고, 특히 IMF와 신용카드 대란으로 인한 상상할 수도 없는 주가 추락을 겪어보았지만, 중국의 투자자들은 아직 이러한 것 들을 겪어 보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 상황이 힘들게 느껴질 것입니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의 공장이고, 많은 인구는 성장 잠재력이 아직도 충분히 있습니다. 꾸준히 기다리면 결국 주가 상승 시기가 오겠지만 주가 대폭락의 경험도 없고, 가용 재산보다 많은 재산을 투자한 중국인들에게는 참으로 힘든 기간이 상당기간 동안 계속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i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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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2 21:33 2008/09/22 21:33
Posted by Lucida_m.

북경 철강 회사 생산 줄이기로

[중국의 대형 철강 업체인 Shougang은 베이징에 있는 공장의 생산을 줄이겠다고 발표하였다. 이 회사는 2008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공기를 맑게 유지하기 위해서 생산량을 작년의 절반 수준인 하루 200,000 톤으로 줄이기로 하였다. 이 경우 배출 가스는 70%줄어들 전망이다.](IHT)

 8월 8일부터 8월 24일까지 올림픽 기간 동안 북경시의 공기오염에 대한 대책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차가 북경 시내에 못 들어오게 하는 조치는 이미 시행되었고, 곧 자동차 홀짝제가 시행될 것이며, 북경 주변의 공장들까지 운영을 감축하거나 가동을 정지 시키는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베이징은 분지 지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대기 오염 물질이 도시 주변에 모이게 되어 오염 문제가 더 심각한 도시입니다.
 우리나라도 88년 올림픽 당시와 2002년 월드컵, APEC 정상 회담 때에 승용차 운행 제한을 시행하였습니다. 대기 오염의 문제라기 보다는 교통체증을 막기 위해서 시행되었던 것입니다만, 이번 중국에서는 교통체증도 체증이지만, 대기 오염 문제도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 88년 홀짝제의 경우에는 강제성이 컸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번 중국의 홀짝제등도 역시 강제적으로 시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도 5부제등을 강제 시행하겠다고 장관발표가 있었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는데, 그냥 국가가 강제한다고 국민들이 따라갈까 하는 고민을 해봅니다.(iam)

 인베브, 안호이저 부시 인수

[미국의 맥주 회사 안호이저 부시는 인베브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5백2십억 달러에 달하는 합병을 수락하였다. 미국 맥주시장의 50%에 이르는 점유율을 가진 안호이저 부시를 인수 함으로 해서 미국 맥주 시장은 유럽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IHT)

 버드와이저와 밀러라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맥주들이 유럽기업이 됨으로 해서 맥주 강국이라고 자부심을 가지던 미국의 자존심이 상처를 받게 될 듯합니다. 미국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도 안호이저 부시가 유럽에 넘어가면 안될 것이라고 주장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인베브는 Beck’s와 Stella Artois 를 생산하는 벨기에 회사입니다. 처음 주당 65달러로 인수를 제안했을 때에는 여러가지 반대 반응이 있었으나, 주당 70달러로 인수 가격을 높이면서 합병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었씁니다. 주당 70달러는 안호이저 부시의 주가가 최고점 이었던 2002년 10월 가격에 27% 프리미엄을 붙여 제안한 것입니다. 결국 현금의 위력이라는 것이 강력하긴 한 듯합니다.
 국내에서는 버드와이저를 두산 OB에서 수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활발한 유통을 하지 못하는 벡스와 스텔라 아토이즈가 시장을 확대 할 수 있을지 살펴 보아야 할 것같습니다.
 맥주를 크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건조한 비행기에서 마시는 버드와이저의 맛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i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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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5 06:13 2008/07/15 06:13
Posted by Lucida_m.